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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알 수 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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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짜 : 12-12-18 14:39
  • 조회 : 6,2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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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알 수 없는 아이들

 

김진관(김진관 정신건강 클리닉)


 

자기 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근심을 안겨줍니다. 자기 표현이 억제된 아이들은 아주 다양한 유형의 패턴을 보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욕심이 없어 보이거나, 좋고 싫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 기쁘거나 슬픈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 아이, 화를 내지 않는 아이, 무엇에도 큰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 평소에 입을 굳게 다물고 대화에 응하지 않으며 늘 괜찮다는 아이, 지나치게 순종만 하는 아이, 무엇이든 자율적으로 행하지 못하는 아이, 남 보살피기에 치중하는 아이 등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정도가 지나치지 않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면 일찍 철이 들었다거나 키우기 참 수월해서 좋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만 이 아이들은 마음이 눌려 있고 그렇게 된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행복감은 욕구와 재미의 충족에서 나오는 것이고 타고난 본능일텐데 너무도 이른 나이에 그걸 일부분이나마 포기했다는 것은 발달 과정의 어느 부분이 막히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또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스스로 자각하지 못해서 표현을 못합니다. 아이들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풀어주는 것은 온전히 부모와 어른들의 몫입니다.



아이들이 건강한 발달을 하려면 인간으로서 타고난 여러 가지의 욕구와 감정들을 쉴 새 없이 드러내고 소통하면서 때로는 채워지고 때로는 좌절하거나 양보하는 수 많은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욕구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행동의 결과는 칭찬이나 꾸중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이런 경험들을 통해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인지가 발달하게 됩니다. 욕구를 보다 더 지혜롭게 채우는 방법을 터득하려면 충분한 경험을 할수록 더 유리하고, 더 좋은 지혜와 수단을 내재화시키는 발달을 이루게 됨으로써 마음에 더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행동 이외에 욕구를 표현하는 또다른 중요한 통로는 감정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 감정들은 기쁨, 슬픔, 외로움, 혐오감, 분노, 수치감, 불안, 기대감 등입니다. 이 모든 감정들은 인간을 긴장없이 숨쉬게 하는데 필수적입니다. 역설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두려움, 분노, 수치감,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 조차 인간이 풍성하고 평안한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감정들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숨을 쉬고 있는 한 욕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그에 따라 감정들도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게 정상입니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데 남의 탓이면 화가 나고 내 탓이면 수치감을 느끼게 됩니다. 욕구가 행여 채워지지 않을까 자신 없을 때 불안하거나 초조하고, 특정 욕구가 좌절되고 채워질 길이 없을 때 슬픔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감정의 표현은 아이가 욕구를 드러내고 세상과 겁없이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아이가 분노, 슬픔, 두려움 또는 수치감 등의 감정들을 여간해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욕구 자체를 스스로 부정, 외면, 회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유쾌한 감정은 분명 아니지만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받고 수용되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가 소중히 다루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자연히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아이들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욕구를 표현했을 때 어차피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강렬한 느낌이 마음 안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깊이 좌절시켰을까요. 자연스럽게 부모의 양육방식을 먼저 살펴볼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고 싶을 때마다 부모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으나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좌절을 깊이 각인시켰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무관심한 부모가 아이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보살필 수는 없겠지요.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와 갈등이 생겼을 때입니다. 아이의 감정에 무관심한 부모는 되도록 빨리 정답을 찾아주고 간단명료한 조언을 주는 성향이 있습니다. 나아가서 아이가 빨리 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감정에 머물러 있으면 다소 짜증스러운 반응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럴 경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소중하지 않고, 자신이 어딘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 상황이 생기게 되었고 해결하지도 못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즉 자신의 감정이 소중한 것들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것들이라는 인식을 자동적으로 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있어 문제 상황의 해결보다 원초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이 부모에게 자신이 소중하다는 느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궁금해하고 차분한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별 것 아닌 상황에서 슬픔, 외로움, 질투, 분노, 또는 수치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그 감정들은 해결이 난망한 골치아픈 것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표현하기만 해도 쉽게 사그라드는 것들입니다. 그런 감정의 발산을 통해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배우게 됩니다. 나아가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욕구와 감정이 부모에게 소중하게 보살펴지는 체험을 쌓게 되면서 자존감이 단단해집니다.



우울하거나 걱정이 많아 늘 초조한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잘 보살펴주는 일이 벅차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안그래도 버거운 세상살이에 뭔가 묵직한 것을 더 얹어주는 기분을 피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이들이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울면서 부모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문제 해결도 위로도 아닌 부모의 긴 한숨, 짜증이나 슬픔을 억누르는 표정, 또는 심하면 꾸지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아이들의 마음 깊이 각인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은 사람의 감정을 해치고 관계를 악화시키는 해로운 것들이라는 믿음입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어둡게 침묵하거나 애써 밝은 척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자신의 욕구에 대해 깨닫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런 경험의 통로가 막힌 것입니다. 말하자면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통로가 하나 막혀버린 셈입니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이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에게도 소중하지 않으니 자존감이 높을 수가 없습니다. 내게 중요한 사람일수록 내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인식이 생깁니다. 내게 중요한 사람을 다치게 해서 그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우니까요.



완벽주의와 성취 지향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는 부모는 지나친 규율을 앞세우면서 아이들을 자주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문제 상황이 발생해서 마음이 복잡해져도 되도록 숨기려는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보다는 부모에게 핀잔을 듣거나 혼나는 것이 더 두려우니까요. 게다가 슬픔이나 분노 또는 불안 등의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면 표정관리까지 잘 해야 하니까 마음 안에 초조한 긴장이 더욱 쌓이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평소의 표정이 복잡하거나 무거울 수 있습니다. 상담에 와서도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성장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단련된 어른들도 상담에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약하거나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은연중에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자세를 갖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부모의 유형과 관계없이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의해 감정 표현이나 자기 표현이 서툰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의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다해도 아이가 겁없이 잘 표현하는 기질인 경우에는 부모로부터의 영향이 최소화되기도 합니다. 즉 아이가 갖고 있는 기질이 부모의 양육태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상황이 개선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이를 도울 때 부모는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려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말 못할 상황을 겪은 후 일시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부모는 자신의 관심을 아이의 감정과 속마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여러모로 살피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선의 노력에도 뭔가 매듭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추가적인 노력은 자기 자신의 성향이나 가치관이 혹시 너무 한방향으로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한 방향에 고착된 시선으로 아이를 보면 아이의 마음이 잘 보일 수가 없겠지요.



아이를 키우다보면 참으로 할 일이 많지요. 부모가 되고서야 비로소 깨닫는 것들이 많아서 내 부모의 노고를 그제서야 이해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이라 하지만 부모도 때로는 힘들고 지쳐서 잠시 쉬고 싶은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완전한 부모는 세상에 없습니다. 부모로서 완전하지 못해도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져야합니다. 그래야만 아이의 마음을 여유롭게 보살필 수가 있으니까요. 거기까지도 부모로서의 당면한 과제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자책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불완전함은 사랑받을 자격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줍니다. 부모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여유롭게 인정하는 자세가 아이들의 자존감에 더욱 큰 힘을 실어줍니다. 부모 자신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세상에서 가장 고단한 일이 부모 역할이지요. 이래저래 부모는 마음을 놓을 여유가 없습니다. 엄마 아빠들 모두 힘내십시오.


[출처] 김진관 심리칼럼(http://blog.aladin.co.kr/aus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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